Writing Column [Column] 더 이상 앱을 만들어 파는 시대가 아니다

개요

비개발자가 자기만의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시대.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의 클라이언트 서비스는 어떻게 변할까. 내가 바라보는 미래를 감히 예측해본다.

이번엔 기업의 이야기다

지난 글 [Column] 더 이상 개발자 없이는 안 된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에서 나는 개발자 개인의 위기를 이야기했다. 에이전틱 코딩 어시스턴트가 코드 작성이라는 행위를 대중화시키면서 개발자의 희소성이 소멸하고 있다는 이야기.

그런데 글을 쓰고 나서 한 달 넘게 이 주제를 곱씹다 보니 빠뜨린 것이 있었다. 개발자 한 명 한 명의 위기에만 초점을 맞추느라 더 큰 그림을 놓치고 있었다. 개발자 개인의 위기 뒤에는 훨씬 더 큰 지각변동이 숨어 있었다. 개발자가 흔들리면 그 개발자를 고용해서 서비스를 만들던 기업은 어떻게 되는가. 코드를 짤 수 있는 사람이 모든 사람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앱과 웹 서비스를 만들어 파는 소프트웨어 기업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이번 글은 그 이야기다. 개발자의 시대가 바뀌었다면 기업의 시대도 바뀐다. 그리고 그 변화의 방향은 많은 사람들이 아직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곳을 향하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

먼저 현재 상황부터 짚자.

전편에서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라는 현상을 언급했다. 코드를 직접 작성하지 않고 AI에게 자연어로 원하는 것을 설명하면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지는 방식. 이것이 불과 몇 달 사이에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마케터가 주말에 자기 팀의 리드 관리 도구를 만들어서 월요일에 팀에 배포한다. 회계사가 자기 고객 관리용 대시보드를 직접 만들어 쓴다. 부동산 중개인이 매물 관리 앱을 만들어 동료들에게 공유한다. 피트니스 트레이너가 회원 관리와 운동 프로그램 관리 앱을 직접 만든다. 이것들은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지금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사람들의 동기다. 이들은 기술에 대한 호기심으로 앱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기 업무에서 느끼는 구체적인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기존 서비스에서 충족되지 않던 니즈가 있었고 그것을 직접 해결할 수 있는 도구가 생기니 당연하다는 듯이 만드는 것이다.

이 미묘한 차이가 중요하다. 바이브 코딩이 단순한 기술 트렌드가 아니라 실제 업무 방식의 전환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이것들이 단순한 토이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Claude Code, Cursor 같은 에이전틱 코딩 어시스턴트들의 수준이 올라가면서 비개발자가 만드는 서비스의 품질이 쓸만한 수준을 넘어 충분히 좋은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디자인은 깔끔하고 기본적인 CRUD 기능은 완벽하게 동작하며 결제 연동이나 인증 같은 복잡해 보이는 기능도 AI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면 구현이 된다.

1년 전만 해도 AI로 만든 앱이라 하면 조잡한 UI에 기능도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데모 수준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에이전틱 코딩 어시스턴트의 발전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6개월 전의 한계가 오늘의 기본 기능이 되어버렸다.

이 속도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비개발자가 만드는 앱의 품질은 계속 올라가고 있고 전문 개발팀과의 격차는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물론 아직 한계는 있다. 복잡한 비즈니스 로직이나 대규모 트래픽 처리 같은 영역은 전문 개발자가 아니면 어렵다. 하지만 세상의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대부분의 앱은 데이터를 입력하고 저장하고 조회하고 수정하는 CRUD에 약간의 비즈니스 로직을 얹은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영역에서 에이전틱 코딩 어시스턴트의 능력은 이미 충분하다.

여기서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비개발자들이 자기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직접 만들 수 있게 되면 기존에 그 서비스를 제공하던 기업들은 어떻게 되는가?

범용 서비스라는 타협

잠깐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해보자. 우리가 왜 기업이 만든 앱과 웹 서비스를 쓰는지.

대부분의 경우 답은 단순하다. 직접 만들 수 없으니까. 투두 앱이 필요하면 Todoist를 다운받고 노트가 필요하면 Notion을 쓰고 프로젝트 관리가 필요하면 Jira를 쓴다. 이 서비스들이 나에게 완벽하게 맞아서가 아니다. 내가 원하는 걸 직접 만들 수 없으니 가장 근접한 것을 골라서 쓰는 것이다.

솔직히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가 이런 경험이 있다. 앱을 쓰면서 “이 기능은 왜 이렇게 되어 있지?”, “이건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데”, “이 기능은 필요 없고 저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같은 불만을 품은 적. 하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개발을 배우거나 개발자를 고용하지 않는 한 기존 서비스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더해 우리는 앱의 생태계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아왔다. 비슷한 기능의 앱이 수십 개씩 있고 그중에서 어떤 것이 나에게 맞는지 직접 다운받아 써보고 비교하고 결국 가장 덜 불만족스러운 것에 정착하는 과정.

이것은 본질적으로 나에게 맞는 것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덜 안 맞는 것을 찾는 과정이었다.

이것이 지금까지 소프트웨어 산업이 돌아간 방식이다. 기업은 평균적인 사용자를 상정하고 서비스를 만든다. 50만 명이 쓰는 투두 앱은 50만 명 중 누구에게도 완벽하게 맞지 않는다. 하지만 50만 명 모두에게 적당히 맞으니 존재할 수 있다. 범용성이라는 타협. 이것이 기존 소프트웨어 비즈니스의 본질이다.

서비스가 스케일이 커질수록 이 타협은 더 심해진다. 50만 사용자를 만족시키려면 기능은 더 일반적이 되어야 하고 인터페이스는 더 평균적이 되어야 한다. 파워 유저를 위한 기능은 초보자를 혼란스럽게 하고 초보자를 위한 단순함은 파워 유저를 답답하게 한다. 기업은 이 양극단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한다. 그리고 결국 누구에게도 완전히 만족스럽지 않은 제품이 나온다.

그런데 그 전제가 무너지고 있다.

내 앱은 내가 만든다

사용자가 직접 자기에게 맞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프리랜서 번역가가 있다. 이 사람의 업무 흐름은 독특하다. 고객에게 견적을 보내고 번역 프로젝트를 관리하며 용어집을 유지하고 인보이스를 발행하는 일련의 과정이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프로젝트 관리 도구를 써볼 수 있다. Notion을 쓸 수도 있고 Trello를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도구들은 번역가의 워크플로에 맞게 설계되지 않았다. 용어집 기능은 따로 관리해야 하고 견적서 양식은 별도 도구가 필요하며 인보이스는 또 다른 서비스를 써야 한다. 결국 여러 도구를 번갈아 쓰면서 비효율을 감수한다.

이제 이 번역가가 에이전틱 코딩 어시스턴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 번역 업무를 관리할 수 있는 앱을 만들어줘. 고객 관리, 견적서 발행, 프로젝트 진행 상황 추적, 용어집 관리, 인보이스 발행까지 하나로 통합된 거.” AI는 이 요구사항을 듣고 번역가에게 딱 맞는 앱을 만들어준다.

디자인이 약간 투박할 수 있다. 일부 기능이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이 번역가의 워크플로에 정확히 맞춰진 도구다. Notion과 Trello와 인보이스 서비스를 오가며 고생하던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이 시나리오를 모든 직군에 대입해보라.

변호사가 자기 사건 관리 시스템을 직접 만든다. 소규모 카페 사장이 자기 매장에 맞는 재고 관리 앱을 만든다. 유튜버가 자기 콘텐츠 기획과 스케줄 관리를 위한 대시보드를 만든다. 학원 원장이 학생 관리와 수업 스케줄링 시스템을 직접 구축한다. 각자가 자기 업무에 최적화된 소프트웨어를 갖게 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이 맞춤형 앱이 한 번 만들어지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용하다가 불편한 점이 발견되면 AI에게 “이 부분 이렇게 바꿔줘”라고 말하면 된다. 기존 서비스에서는 기능 요청을 보내고 개발팀이 반영해줄 때까지 몇 달을 기다려야 했던 일이 즉시 해결된다. 사용자가 자기 서비스의 로드맵을 직접 결정하는 것이다. 어떤 기능을 넣을지 어떤 순서로 개선할지 모든 의사결정이 사용자 본인의 손에 있다.

50만 명이 쓰는 범용 투두 앱과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맞춤형 투두 앱. 둘 다 무료라면 당신은 어느 쪽을 쓰겠는가. 답은 뻔하다.

범용 서비스의 존재 이유였던 직접 만들 수 없으니까가 사라지는 순간 그 서비스의 가치는 급격히 떨어진다. 이것이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직면한 근본적인 위기다.

기존 기업의 딜레마

이 변화가 모든 소프트웨어 기업에 동일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당수의 기업이 심각한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것은 단순 CRUD 기반의 유틸리티 앱과 생산성 도구들이다. 투두 앱, 메모 앱, 습관 추적 앱, 가계부 앱, 일정 관리 앱. 이런 앱들의 핵심 기능은 데이터를 만들고 읽고 수정하고 삭제하는 것이다. 바로 에이전틱 코딩 어시스턴트가 가장 잘하는 영역이다.

이런 앱을 운영하는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해보자. 대부분은 프리미엄(freemium) 모델이다. 기본 기능은 무료로 제공하고 고급 기능에 월 구독료를 받는다. 또는 무료 사용자에게 광고를 보여주고 광고비로 수익을 올린다.

그런데 사용자가 자기만의 앱을 직접 만들 수 있게 되면 이 비즈니스 모델의 근간이 흔들린다. 왜 월 5,000원을 내고 다른 사람이 만든 투두 앱을 써야 하는가? 내가 원하는 기능만 딱 넣어서 직접 만들면 되는데. 왜 광고를 참으면서 무료 앱을 써야 하는가? 광고 없는 내 앱을 만들면 되는데.

이것은 단순히 한두 개 앱의 문제가 아니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다.

지금까지 소프트웨어 기업의 경쟁 전략은 크게 두 가지였다. 더 많은 기능을 더 저렴하게 제공하거나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것. 그런데 사용자가 자기에게 정확히 맞는 서비스를 직접 만들 수 있게 되면 이 두 가지 전략 모두 의미를 잃는다. 더 많은 기능? 사용자는 자기에게 필요한 기능만 원한다. 더 나은 UX? 사용자 자신이 가장 편한 방식으로 직접 설계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불편한 진실이 있다.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의 기능 추가는 종종 사용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를 위한 것이었다. 구독 모델을 정당화하기 위해 기능을 인위적으로 분리하고 무료 버전에서 핵심 기능을 제한하고 업셀링을 위한 프리미엄 기능을 만들어내는 것.

사용자 입장에서는 내가 필요한 기능 하나를 쓰기 위해 쓰지도 않는 기능이 잔뜩 포함된 “프로 플랜”에 가입해야 하는 경험을 수없이 해봤을 것이다. 자기 앱을 직접 만들면 이런 인위적 제한이 사라진다. 필요한 기능만 넣으면 끝이다.

물론 이 변화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사용자가 당장 AI로 자기 앱을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방향은 명확하다. 그리고 그 방향이 명확한 순간 기업은 이미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기술의 변화가 아니라 권력의 이동이다.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권력이 기업에서 개인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과거에는 기업이 무엇을 쓸 것인가를 결정했다. 사용자는 기업이 만들어놓은 메뉴에서 골라야 했다. 미래에는 사용자가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직접 결정한다. 이 권력 이동의 의미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광고 모델의 위기

여기서 한 가지 더 파고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다. 광고 모델이다.

현재 인터넷 경제의 상당 부분은 광고로 돌아간다. 구글, 메타, 수많은 무료 앱과 서비스들. 이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본질적으로 같다. 사용자에게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사용자의 관심(attention)을 광고주에게 판매하는 것.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하여 정교한 타겟 광고를 돌리는 것. 이것이 지난 20년간 인터넷 경제를 지배해온 모델이다.

그런데 사용자가 직접 만든 앱에는 광고가 없다. 당연하다. 내가 내 필요에 의해 만든 앱에 왜 광고를 넣겠는가. 데이터 수집도 없다. 내 데이터는 내 앱에 내 서버(또는 내 클라우드)에 저장된다. 제3자에게 넘어갈 이유가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보라.

사용자들이 범용 무료 앱 대신 자기만의 맞춤형 앱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광고를 노출할 접점 자체가 줄어든다. 기업이 사용자의 행동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채널이 줄어든다. 광고 기반 비즈니스 모델의 근간인 대규모 사용자 풀에 대한 접근이 약화되는 것이다.

물론 구글 검색이나 유튜브 같은 거대 플랫폼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소 규모의 앱과 서비스에서 광고 기반 모델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사용자가 무료 앱 + 광고 대신 내가 만든 앱 + 광고 없음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순간 광고 모델의 매력은 급감한다.

데이터 수집 모델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많은 서비스가 무료로 쓰세요, 대신 데이터를 주세요라는 암묵적 거래 위에 성립했다. 사용자 대부분은 이 거래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더라도 대안이 없으니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제 대안이 생겼다. 내 데이터를 넘기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서비스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광고 업계의 문제가 아니다. 광고와 데이터 수집에 기반한 인터넷 경제의 구조 자체가 도전받게 된다는 이야기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자. 광고 모델이 약화되면 무료 서비스라는 개념 자체가 흔들린다. 지금까지 우리가 누려온 수많은 무료 서비스들은 사실 무료가 아니었다. 우리의 관심과 데이터로 비용을 치르고 있었을 뿐이다.

사용자가 자기 앱을 직접 만들면 이 암묵적 거래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거기에는 광고도 없고 트래킹도 없고 푸시 알림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귀찮게 하는 것도 없다. 순수하게 자기 목적만을 위해 존재하는 소프트웨어. 어쩌면 이것이 소프트웨어 본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모듈 경제의 도래

그렇다면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어떤 방향으로 전환해야 하는가. 나는 감히 그 답이 모듈 경제에 있다고 예측한다.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추측이다. 하지만 나름의 근거가 있는 추측이다.

지금까지의 소프트웨어 기업은 완성품을 팔았다.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개발하고 테스트해서 완성된 앱이나 웹 서비스를 사용자에게 제공했다. 사용자는 그 완성품을 있는 그대로 사용했다.

미래의 소프트웨어 기업은 부품을 팔게 될 것이다. 결제 기능, 인증 기능, 지도 기능, 채팅 기능, 배송 추적 기능, 예약 기능, 결제 정산 기능. 이런 기능들을 독립적인 모듈 형태로 제공하고 사용자(또는 사용자의 AI)가 이것들을 조립해서 자기만의 서비스를 만드는 구조.

사실 이 모델의 선구자는 이미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은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기업들이기도 하다.

Stripe는 결제 기능을 API로 제공한다. Stripe가 자체적인 쇼핑몰이나 결제 앱을 만들어서 사용자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결제가 필요하면 우리 API를 가져다 쓰세요라는 모델이다. Twilio는 문자, 음성 통화, 영상 통화 기능을 API로 제공한다. Auth0는 인증 기능을 제공한다. Mapbox는 지도 기능을 제공한다. Algolia는 검색 기능을 제공한다.

이 기업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자체 클라이언트 서비스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특정 기능을 최고 수준으로 구현하여 다른 서비스에 플러그인 할 수 있는 형태로 제공한다. 이들이 파는 것은 앱이 아니라 기능이다.

나는 이것이 소프트웨어 산업의 미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이것은 나의 예측이다. 모든 소프트웨어 기업이 이런 형태로 전환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상당수의 기업이 완성품 판매에서 기능 제공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재정의해야 하는 시점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전환의 핵심은 무엇을 파는가가 아니라 누구에게 파는가의 변화다. Stripe의 고객은 최종 소비자가 아니라 개발자다. 개발자가 Stripe를 선택하면 수백만 최종 사용자가 자연스럽게 Stripe를 통해 결제하게 된다. 미래에는 이 구조가 한 단계 더 확장된다. 고객이 개발자가 아니라 AI 에이전트가 되는 것이다. AI가 결제 기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가장 적합한 모듈를 자동으로 선택하고 연동한다. 기업의 마케팅 대상이 사람에서 AI로 바뀌는 것이다. 기묘하지만 이것이 현실이 될 수 있다.

생각해보라. 에이전틱 코딩 어시스턴트에게 “결제 기능이 있는 쇼핑몰을 만들어줘”라고 말하면 AI는 Stripe API를 연동한 쇼핑몰을 만들어줄 것이다. “실시간 채팅 기능을 넣어줘”라고 하면 기존의 채팅 SDK를 가져다 붙일 것이다. “지도에 매장 위치를 표시해줘”라고 하면 지도 API를 연동할 것이다. AI가 모든 것을 밑바닥부터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잘 만들어진 기능 모듈를 조립하는 것이다.

이 구조에서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인가. 완성된 앱이 아니라 그 앱을 구성하는 개별 기능 모듈다.

결제를 안전하고 편리하게 처리하는 기능. 수백만 명이 동시에 접속해도 견디는 실시간 통신 기능. 정확하고 빠른 지도 렌더링 기능. 이런 것들은 비개발자가 AI로 직접 만들기 어렵다. 깊은 전문성과 인프라와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역전이 일어난다. 과거에는 기업이 사용자에게 우리 앱을 쓰세요라고 했다. 미래에는 기업이 사용자(의 AI)에게 우리 기능을 가져다 쓰세요라고 하게 된다. 사용자와의 관계가 B2C에서 B2B2C, 더 정확히는 B2AI2C로 바뀌는 것이다.

블록 조립형 서비스 생태계

모듈 경제가 본격화되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지금은 하나의 서비스를 만들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구현하거나 하나의 플랫폼 위에서 그 플랫폼이 제공하는 틀 안에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모듈 경제에서는 레고 블록을 조립하듯이 서비스를 만들게 된다.

결제 블록은 Stripe에서 가져오고 인증 블록은 Auth0에서 가져오고 지도 블록은 Mapbox에서 가져오고 검색 블록은 Algolia에서 가져온다. 여기에 자기만의 비즈니스 로직을 더하면 하나의 완성된 서비스가 된다. 이 조립 과정을 사람이 직접 할 수도 있고 AI가 대신 해줄 수도 있다.

이런 생태계에서 새로운 형태의 마켓플레이스가 등장할 것이다. 앱 스토어가 완성된 앱을 거래하는 마켓플레이스였다면 미래의 마켓플레이스는 기능 모듈를 거래하는 곳이 될 수 있다. 기업이든 개인 개발자든 특정 기능을 모듈로 만들어 올리면 다른 사용자들이 그것을 자기 서비스에 조립해서 쓰는 구조.

npm이나 PyPI 같은 패키지 매니저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지금은 개발자만 이 생태계를 이용한다. 하지만 에이전틱 코딩 어시스턴트가 중간에서 통역 역할을 해주면 비개발자도 이 생태계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내 앱에 결제 기능을 넣어줘”라고 AI에게 말하면 AI가 적절한 결제 모듈를 찾아서 연동해주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하나 더 생긴다. 이런 생태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모듈는 무엇인가.

나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본다. 첫 번째는 인프라 수준의 복잡성을 가진 기능이다. 결제, 인증, 실시간 통신, 미디어 처리, 검색 엔진 같은 것들. 이것들은 제대로 구현하려면 엄청난 전문성과 인프라가 필요하다. 비개발자가 AI로 “결제 시스템을 밑바닥부터 만들어줘”라고 해봤자 금융 규제, PCI DSS 컴플라이언스, 사기 탐지, 다중 통화 처리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런 기능은 전문 기업이 모듈로 제공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합리적이다.

두 번째는 도메인 특화 기능이다. 의료 분야의 전자처방전 시스템, 물류 분야의 배송 경로 최적화 엔진, 금융 분야의 리스크 평가 모델, 교육 분야의 학습 진도 추적 시스템 같은 것들. 특정 산업의 깊은 도메인 지식과 규제 준수가 필요한 기능들이다. 이것도 비개발자가 AI만으로 구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전문 기업이 잘 만들어진 모듈로 제공하면 비개발자라도 자기 서비스에 통합할 수 있다.

결국 미래의 소프트웨어 기업은 이 두 유형 중 하나에서 깊은 전문성을 갖추고 그것을 모듈로 제공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한 가지 더 생각해볼 것이 있다. 모듈의 품질이 기존과는 다른 차원에서 평가받게 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소프트웨어의 품질은 주로 기능의 완성도와 UI의 세련됨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모듈 경제에서는 다른 기준이 중요해진다. API의 설계가 직관적인가. 문서화가 잘 되어 있는가. 에러 메시지가 AI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한가. 다른 모듈와의 호환성은 좋은가. 버전 업데이트 시 하위 호환성을 유지하는가. 이런 것들이 모듈의 경쟁력을 결정하게 된다.

이것은 소프트웨어 기업의 역량 구조 자체를 바꾼다. 과거에는 프론트엔드 디자이너와 UX 전문가가 핵심 인력이었다면 모듈 기업에서는 API 설계자, 문서 작성자, DX(Developer Experience) 전문가가 핵심 인력이 된다.

그리고 앞으로는 DX가 아니라 AX(AI Experience), 즉 AI가 사용하기 좋은 경험을 설계하는 역량이 중요해질 수도 있다.

남는 것과 사라지는 것

모든 소프트웨어 서비스가 모듈로 대체되지는 않는다. 이 변화 속에서 살아남는 것과 위험해지는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살아남는 것들.

첫째, 네트워크 효과가 핵심인 서비스.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유튜브, 링크드인 같은 소셜 네트워크와 메신저. 이 서비스들의 가치는 기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거기 있다는 데 있다. 내가 아무리 좋은 메신저를 직접 만들어도 내 친구들이 그걸 쓰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네트워크 효과는 개인이 복제할 수 없는 진입 장벽이다.

둘째, 대규모 데이터가 가치의 원천인 서비스. 구글 검색, 구글 맵, Spotify, Netflix 같은 서비스. 이들의 가치는 수십억 개의 웹 페이지를 인덱싱한 데이터, 전 세계 도로와 장소 정보, 수천만 곡의 음원 라이센스, 수만 편의 영상 콘텐츠에 있다. 이런 데이터 자산은 개인이 복제할 수 없다.

셋째, 클라우드 인프라. AWS, Azure, GCP 같은 클라우드 플랫폼. 사용자가 직접 앱을 만든다고 해도 그 앱은 어딘가에 호스팅되어야 한다. 서버 인프라는 오히려 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앱을 만들면 호스팅할 앱의 총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넷째, AI 플랫폼 자체. OpenAI, Anthropic, Google 같은 AI 모델 제공자들. 에이전틱 코딩 어시스턴트의 핵심 엔진을 제공하는 이들은 모듈 경제의 인프라 위의 인프라다. 모든 사용자가 AI를 통해 서비스를 만들수록 AI 플랫폼의 가치는 올라간다. 이들은 이 패러다임 전환의 최대 수혜자다.

위험해지는 것들.

첫째, 단순 CRUD 앱. 투두 앱, 메모 앱, 습관 추적 앱, 가계부, 일기장 앱 같은 것들. 이런 앱의 핵심 기능은 AI가 쉽게 복제할 수 있다. 사용자가 자기에게 맞는 버전을 직접 만들 수 있으면 범용 앱을 쓸 이유가 줄어든다. 앱 스토어에서 투두 앱을 검색하면 수천 개가 나오는 현재 상황 자체가 이미 이 시장이 과포화 상태라는 증거다. 여기에 무한 맞춤형 선택지까지 추가되면 기존 투두 앱 기업들의 생존은 극도로 어려워진다.

둘째, 중소 규모의 SaaS. 특정 틈새시장을 노린 SaaS 중 차별화 요소가 편리한 인터페이스나 올인원 기능인 서비스. 이런 서비스의 가치 제안은 에이전틱 코딩 어시스턴트가 대체할 수 있다.

셋째, 광고 기반 무료 앱. 앞서 말했듯이 사용자가 광고 없는 자기 앱을 만들 수 있으면 광고를 참으면서 무료 앱을 쓸 유인이 사라진다.

넷째, 단순 래퍼(wrapper) 서비스. 기존 API 위에 예쁜 인터페이스를 씌운 것이 전부인 서비스. AI가 인터페이스를 만들어줄 수 있으므로 이런 중간 레이어의 가치가 감소한다. 사실 이미 많은 래퍼 서비스들이 AI의 등장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 AI API 위에 얇은 UI를 씌워서 월 구독료를 받던 서비스들이 사용자들이 직접 API를 호출할 수 있게 되면서 존재 이유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핵심을 정리하면 이렇다. 대체 불가능한 자산을 가진 서비스는 살아남고 기능이 전부인 서비스는 위험하다. 네트워크 효과, 대규모 데이터, 깊은 전문성, 물리적 인프라. 이런 것들은 AI가 복제할 수 없다. 하지만 코드로 만들어진 기능은 AI가 복제할 수 있다.

기업의 생존 전략

이 변화를 인식한 기업이 취해야 할 전략은 무엇인가.

첫째, 서비스 제공자에서 기능 제공자로의 전환. 자체 앱이나 웹 서비스를 통해 최종 사용자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델에서 핵심 기능을 API, SDK, 모듈 형태로 제공하는 모델로 전환하는 것이다. 자사가 가진 가장 깊은 전문성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독립적으로 사용 가능한 모듈로 분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둘째, AI 에이전트 친화적인 인터페이스 설계. 미래의 사용자는 사람이 아니라 AI 에이전트일 수 있다. AI가 모듈를 검색하고 평가하고 연동하는 과정을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API를 설계해야 한다. 문서가 잘 정리되어 있고 에러 메시지가 명확하며 테스트 환경이 제공되는 것. 이런 것들이 AI 에이전트가 기능을 선택할 때의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셋째, 대체 불가능한 자산의 구축. 코드로 만들어진 기능은 복제될 수 있다. 하지만 수년간 축적된 데이터, 업계 규제에 대한 컴플라이언스, 신뢰성 트랙 레코드, 파트너 네트워크 같은 것들은 쉽게 복제되지 않는다. 기업은 이런 대체 불가능한 자산을 의식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넷째, 도메인 전문성의 모듈화. 특정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기업이라면 그 이해를 코드로 모듈화하는 것이 강력한 전략이 된다. 의료 규제를 완벽하게 준수하는 환자 데이터 관리 모듈, 금융 규제를 충족하는 거래 처리 엔진, 물류 최적화 알고리즘을 탑재한 배송 관리 SDK. 도메인 지식과 기술의 결합이 가장 방어력 높은 해자가 된다.

다섯째, 생태계 전략. 독점적인 플랫폼을 만들려 하기보다 열린 생태계에서 가장 좋은 부품이 되는 전략. 많은 기업이 우리 플랫폼 위에서 모든 것을 하세요라는 올인원 전략을 추구해왔다. 하지만 사용자가 자기 서비스를 직접 조립하는 시대에는 특정 기능에서 최고가 되어 어떤 조합에도 잘 끼워맞춰지는 부품이 되는 것이 더 유리하다. Stripe가 결제에서 그런 위치를 차지한 것처럼.

이 전략들에서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원칙이 하나 있다. 만들어주는 것에서 도와주는 것으로의 전환이다. 과거에는 기업이 사용자 대신 서비스를 만들어줬다. 앞으로는 사용자가 직접 만드는 것을 도와주는 역할로 바뀐다. 완성품이 아니라 재료를 제공하고 조리법이 아니라 식재료를 파는 것이다. 이 관점의 전환이 어쩌면 가장 어려운 부분일 수 있다. 20년간 우리가 최고의 앱을 만들어서 제공하겠다는 마인드셋으로 운영해온 기업에게 우리는 부품 공급자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의 방향을 거스르는 자존심은 사치다.

이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것이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API 이코노미(API Economy)라는 개념은 이미 수년 전부터 존재했다. Stripe, Twilio, Auth0, SendGrid, Cloudinary, Algolia. 이 기업들은 이미 기능을 파는 비즈니스 모델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들은 미래에서 온 것이 아니라 현재 시장에서 검증된 모델이다.

달라지는 것은 이 모델의 적용 범위다. 과거에는 기능 모듈의 소비자가 개발자와 기업이었다. API를 연동하고 SDK를 통합하려면 기술적 역량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이전틱 코딩 어시스턴트가 이 기술적 장벽을 낮추면서 기능 모듈의 잠재적 소비자가 모든 사람으로 확대된다.

마케터가 AI에게 “이메일 마케팅 자동화 도구를 만들어줘. SendGrid로 이메일 발송하고 Stripe로 결제받게 해줘”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소규모 사업자가 “우리 가게 예약 시스템 만들어줘. 카카오톡 알림 보내고 결제도 되게”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AI가 적절한 모듈를 조합해서 서비스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것은 API 이코노미의 확장이자 민주화다. 개발자만 접근할 수 있던 모듈 생태계가 AI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열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민주화는 피드백 루프를 만들어낸다. 모듈의 소비자가 많아지면 모듈를 만드는 공급자도 늘어난다. 더 많은 기능 모듈가 등장하면 AI가 조립할 수 있는 서비스의 종류도 다양해진다. 서비스의 종류가 다양해지면 더 많은 사용자가 나도 만들 수 있겠는데?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선순환이 시작되면 모듈 경제는 가속화된다.

반론에 대하여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 중 일부는 이렇게 반론할 수 있다.

“사용자 대부분은 귀찮아서 직접 안 만든다. 그냥 기존 앱 다운받아서 쓰는 게 편하다.”

맞다. 지금은 그렇다.

하지만 이것은 에이전틱 코딩 어시스턴트의 UX가 아직 충분히 간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앱을 만들려면 프롬프트를 이것저것 고민해야 하고 결과물을 확인하고 수정을 요청하고 배포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앱스토어에서 다운로드 버튼 하나 누르는 것보다 훨씬 번거롭다.

하지만 이 마찰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가계부 앱 만들어줘”라고 말하면 30초 만에 내 폰에 설치되는 날이 오면 어떨까. 앱스토어에서 가계부를 검색하고 10개 중에 고르고 다운받아서 계정 만들고 세팅하는 시간보다 빠르다면? 그 순간이 오면 귀찮아서라는 반론은 성립하지 않게 된다.

“기존 서비스에는 수년간 쌓인 노하우와 데이터가 있다.”

이것도 부분적으로 맞다. 하지만 그 노하우가 사용자에게 얼마나 가치를 주는지는 다시 따져봐야 한다. 많은 경우 서비스의 노하우라는 것은 어떻게 하면 사용자를 더 오래 붙잡아둘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유료 전환율을 높일 수 있는가에 대한 노하우이지 어떻게 하면 사용자의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노하우가 아닌 경우가 많다. 사용자가 직접 만드는 앱에는 다크 패턴이 없고 인위적 제한이 없으며 순수하게 자기 문제 해결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이런 반론들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변화의 방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속도에 대한 논쟁일 뿐이다. 그리고 기술 발전의 역사에서 속도를 과소평가하는 쪽이 거의 항상 졌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

큰 그림을 그려보자.

지난 20년간 소프트웨어 산업은 완성된 서비스를 최종 사용자에게 직접 제공하는 모델로 돌아갔다. 앱 스토어에 앱을 올리고 웹사이트를 오픈하고 사용자를 모으고 광고나 구독으로 수익을 올렸다. 이 모델의 핵심 전제는 사용자는 만들 수 없으니 우리가 대신 만들어준다였다.

에이전틱 코딩 어시스턴트가 이 전제를 무너뜨리고 있다. 사용자가 직접 만들 수 있게 되면 대신 만들어주는 비즈니스 모델의 가치가 감소한다. 내가 보는 미래는 완성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부품을 파는 것이 합리적인 세상이다.

이것은 제조업에서 이미 일어난 일과 비슷하다. 과거에는 가구를 사려면 가구점에서 완성품을 샀다. 그러다 IKEA가 나타나 부품을 팔기 시작했다. 소비자가 직접 조립하는 대신 더 저렴하고 자기 취향에 맞는 조합을 만들 수 있게 했다. 3D 프린터가 보급되면서 이제는 설계 파일만 있으면 부품 자체를 직접 만들 수도 있게 되었다.

소프트웨어 산업도 비슷한 궤적을 따르고 있다. 완성품 시대에서 반제품(모듈) 시대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사용자가 AI와 함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만드는 시대로. 물론 마지막 단계까지 가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중간 단계인 모듈 경제로의 전환은 이미 눈앞에 와 있다.

이 전환이 가져올 긍정적인 면도 있다.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 맞는 소프트웨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소프트웨어의 민주화가 완성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소프트웨어는 만드는 사람과 쓰는 사람이 분리되어 있었다. 그 분리가 사라진다. 모든 사용자가 곧 개발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사용자가 자기 소프트웨어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기업이 결정한 기능과 인터페이스에 맞춰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과 업무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직접 정의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PC 혁명 이후 가장 큰 컴퓨팅 패러다임의 전환일 수 있다. PC가 컴퓨터를 쓰는 행위를 대중화했다면 에이전틱 코딩 어시스턴트는 컴퓨터에게 시키는 행위를 대중화하는 것이다.

전편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개발자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가치는 코드를 짜는 행위에 있는가, 아니면 그 코드로 해결하는 문제에 있는가.” 이번에는 소프트웨어 기업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 기업의 가치는 앱을 만들어서 배포하는 행위에 있는가, 아니면 그 앱 안에 담긴 핵심 기능과 전문성에 있는가.

앱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하지만 그 앱 안에 들어가는 결제 시스템, 인증 체계, 도메인 특화 로직은 아무나 만들 수 없다. 그것을 만들 수 있는 기업이 모듈 경제에서 승자가 될 것이라고 나는 본다.

개발자의 시대가 바뀐 것처럼 기업의 시대도 바뀌고 있다. 나는 클라이언트 서비스를 만들어 파는 시대가 저물고 핵심 기능을 모듈로 제공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전편에서 개발자들에게 물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같은 구조의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기업은 앱을 만드는 기업인가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인가. 앱은 도구일 뿐이다. 도구는 대체될 수 있다. 하지만 깊은 전문성과 신뢰는 대체되지 않는다.

이 전환을 인식하고 준비하는 기업만이 다음 시대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이 전환은 대부분의 기업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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